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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오후/영화, 매체

[영화] Birdman: 슈퍼히어로의 시대에 날아오르다

by 주말의늦잠 2015. 3. 5.




슈퍼히어로의 시대에 날아오른 버드맨


  슈퍼히어로의 시대. 또다른 ~맨이 극장가에 나타났다. 버드맨. 영화에서 버드맨은 현재 할리우드 슈퍼히어로의 전 세대쯤 되는 위치를 차지한다. 버드맨3까지 찍고 리건 톰슨은 거의 퇴물이 된 상태. 그래서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을 각색한 연극으로 브로드웨이에서 재기를 꿈꾼다. 감독이 영화를 long take으로 찍기도 했고, 사실 영화 자체가 극 중 리건 톰슨의 내적 고뇌 (다중인격을 갖고 있는 것 같다..)를 다루고 있어서 마치 영화가 끝난 후에는 연극인의 머릿속을 다녀온 느낌이다. 카메라가 집요하게 등장인물과, 그들 사이의 만남 및 갈등을 쫓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알아봤더니, 알레한드로 감독이 일부러 그렇게 찍은 것이란다. 그래서 영화를 찍을 때 마치 연극을 하는 것 처럼 장소와 시간, 소품, 상황등을 치밀하게 짜놓고 롱 테이크 샷을 가져갔고, 덕분에 영화 편집에는 2주도 안 걸렸다고 한다.. 정말 초현실적 연극을 보고 나온 느낌.


  이 영화는 교묘하게 할리우드를 '까는' 듯 하다. 리건 톰슨의 내적 인격인 버드맨은 '지금 우리 자리를 저 깡통을 입은 (아이언맨을 일컬음) 풋내기들한테 다 뺏겼다'며,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 싶은 속내를 드러낸다. 동시에 리건 톰슨은 '뭔가 중요한 것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을 각색한 연극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리는 것)'을 한다면서, 스크린에서 빵빵 터뜨리고, 일상에 지친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블록버스터를 찍는 것을 거부한다. 이중적 모습. 얼마나 역설적인가! 그가 그렇게도 밀어내고 싶었던 버드맨의 잔상은 미국인들의 마음 속에 깊이 박혀있고, 그가 브로드웨이를 걸어도 사람들은 그를 '버드맨'으로 기억한다. 영화의 마지막, 그는 무대 위의 '상징적인 자살'에 성공한 후, 변기에 앉아있던(^^;) 버드맨에게 fuck you하며 돌아선다. 하지만 그가 붕대를 감은 모습, 병실에서 창공을 날으는 새들을 바라보는 모습 뒤에 여전히 버드맨이 어른거리지 않는가? 


  대중에게 연예인 혹은 영화인의 '이미지'는 얼마나 견고한 것일까? 우리가 '미달이'로 기억하는 김성은 씨 역시, 그 미달이 이미지를 벗어내기 위해 몇 년을 노력하지만 (에로영화도 찍은 것 같다..).. 결국 우리는 '김성은이 누군데?'하면 '아~ 걔 순풍산부인과 미달이 있잖아' 하지 않을까? 극 중 리건 톰슨은 자신의 '버드맨'을 자살'시키고' 성공적인 브로드웨이 초연을 마친다. 그는 잘나가는 연극배우 마이크 (에드워트 노튼 분)를 제치고 신문 1면을 장식한다. 그의 연극을 부숴버릴 거라고 무섭게 장담했던 비평가의 아티클 제목 "The unexpected virtue of ignorance". 원제 Birdman의 부제이기도 하다.


예상치 못한 무지의 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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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배우들의 색다른 면모


  재미있는 것은 극 중 리건 톰슨을 분한 배우가 원조 배트맨을 연기했던 마이클 키튼이라는 점. 그래서 비평가도, 논객도, 관객도 모두 마이클 키튼의 생을 닮아있는 영화구나,, 하고 느끼는데. 정작 마이클 키튼은 이 영화속의 리건 톰슨이 자기가 연기해 본 역 중 가장 '달랐던 (Dissimilar)' 배역이라는 인터뷰를 한다. 깨알같이 싸이코 스러운 연극 배우 마이크를 훌륭하게 소화해낸 에드워드 노튼의 눈빛도, 하이틴 스타 이미지를 살짝 벗어나는 엠마 스톤의 연기도 좋았다. 에드워드 노튼이야 원래 믿고 보는 배우긴 하지만.. 의외로 나오미 와츠는 별로 빛을 못 본것 같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여집합


  자살미수로 코를 날려버린 아빠의 모습을 찍어 깨알같이 트위터 생중계 해주는 딸과, 그런 카타스트로프를 보며 촛불을 들어주는 사람들. 버드맨의 속삭임 뒤로 뉴욕 시내에서 벌어지던 '버드맨: 레전드의 귀환' 시뮬레이션. 그래, 그게 관객에게 먹히는 영화지. 연극은 고대시대부터 인류와 함께해온 예술이지만, 영화는 이제 태어난지 200년도 안 된 신생 예술이 아닌가. 그래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또 영화 속에서 연기하는 사람도.. 도대체 '영화'가 무엇인지? 계속적으로 물음을 제기하는 것일까. 과연 스크린과 돌비사운드를 빵빵 울리고, 눈 앞에서 슈퍼파워를 뽐내는 히어로들의 블록버스터가 잘 '팔린다'고 해서, 그 영화들이 영화라는 장르의 본질을 대변하는 것일까? 그 장르의 부분을 대변할 수는 있겠으나.. 여전히 그 여집합은 살아있다. 거대 자본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영화들은 언제나 만들어질 것이고, 내가 좋아하든 말든, 그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계속 자기의 길을 걸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영화관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