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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을 걷다

버마 시절 - 조지 오웰

by 주말의늦잠 2021. 5. 3.

버마시절 표지

 

  2021년 3월 말에 경황없이 양곤을 떠나 서울에 도착했다. 다행히 코로나 음성확인서는 미얀마에서 귀국하는 모든 국민들에게 특별면제사항이었다. 머리가 산란스러웠고,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들었다. 3월 내내 내가 살던 도시 양곤에서는 사람들이 군경의 총에 픽픽 쓰러졌다. 그들은 몸을 쏘는게 아니라 머리를 조준사격했다, shot to kill. 이게 내가 2년동안 살았던 나라란 말인가..? 마치 인지부조화의 늪에 빠진 듯 했다. 어떻게 이런일이 있을 수가... 이 아름다운 나라에 이런 일이 있어야 한단 말인가. 또? 그렇다. 미얀마는 쿠데타가 낯설지 않은 나라다. 영국으로부터 독립 후 60년 이상을 군부 지배하에 있었고, 그 사이에 크고 작은 쿠데타는 몇 번 일어났다. 1987년 한국의 광주 민주화 운동, 1988년의 미얀마의 민주화 8888운동, 그리고 중국의 1989년 천안문 저항운동. 물론 비슷한 시기에 필리핀, 인도네이아, 대만도 비슷한 움직임을 겪는다. 80년대 발 각자 시민의 각성으로 불던 이 민주화운동은 2021년 현재 얼마나 다른 방향으로 각 국의 방향을 이끌었는지 통감하게 해준다. 미얀마는 안타깝게도... 10년간의 '민주화 실험'후 다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버렸다.

 

  미얀마의 국민들과 그리고 외국인들 (나 포함)은 여전히, 부단히도 이 사태에 대한 정합적인 설명을 찾으려 하고 있다. 왜? 라는 질문에 정합적인 답변이 나오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유 그리고 가정, 이유에 대한 장단점,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종합되었을 때 미얀마의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을거라는 맥락이 설명이 되는데. 그리고 그런 맥락을 통해 해결방안도 찾을 수 있을 것이므로. 어쨋든 내가 2달간 머리싸매고 읽고 듣고 종합해본 정보로는, 그들, 즉 군부는 일반 국민들과는 다른 평행우주에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의 잘 짜여진 세상 속에서, 군부는 민주주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세력에 대항하는, 미얀마의 '훈련된 민주주의 (disciplined democracy)'를 지키는 디펜더다.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나는 그래서 한동안 미얀마 역사를 들여다봤다. 대제국 영국과 전쟁을 치뤘던 동남아시아의 강국 버마가, 20세기의 최빈국으로의 자유낙하를 하던 그 역사. 그리고 그 속에는 한국처럼 제국주의의 식민지배를 당했던 시기가 있다. 버마는 처음에는 독일령이었다가, 영국령 그리고 일본령이 되었다가 독립한 케이스다. (한국 역사와는 내러티브가 많이 다르기도 하다.)

 

  그러다가, 내가 좋아하는 조지 오웰이 영국령 버마에서 제국 공무원으로 일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정확히는 "인도 제국주의 경찰"이다. 당시 영국은 버마를 다른 나라로 보고 체제를 세운게 아니라, 그냥 인도의 한 부분으로 통치했으므로 당시 버마는 그냥 영국령 인도의 한 지역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 지역에서 경찰공무원을 하던 조지 오웰... 그래서 미얀마 사태에 대한 그 어떤 통찰이나 분석도 얻을 수가 없던 찰나,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조지오웰의 '버마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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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적으로, 나는 이 소설에 정말 빠져들어 읽었다. Upper Burma에 위치한 카우크다다라는 소읍의 하급치안판사 우 포킨의 묘사로 소설이 시작하는데, 나는 이 인물의 외관과 카우크타다 읍의 살인적인 더위를 설명하는 시작 단락부터 조지오웰이 뭘 설명하는지 간파할 수 있었다. 내가 건기와 우기에 느꼈던 미얀마의 그 공기, 미얀마 중부의 그 건조하고 모래가 섞인 훕훕한 바람. 당시 영국에서 별볼일 없는 영국인들이 기회를 찾아 식민지로 몰려들던 그런 시기다. 식민지에서는 아주 명징하게 계급구조가 짜여있고, 그 계급은 사회, 경제, 문화, 종교의 모든 하부구조를 결정한다. 얼굴이 하얀 영국인은 1등 시민, 그리고 하급관리나 식민지 지배의 시다바리 역할을 하던 인도인/ 벵갈계 민족들은 2등 시민, 그리고 피지배국인 버마인들은 3등시민. 그 속에서도 남자(지배)-여자(피지배), 인간(지배)-동물(피지배)의 차별의식은 날줄과 씨줄처럼 섞여있는 그런 숨막히는 시대상이고, 그것이 시대정신이었던 그런 세상이 있었다.

 

  이 소설의 화자인 플로리, 아마도 조지 오웰의 목소리를 내주는 인물이 아닐까 한다. 아무래도 이건 자전적 소설인 것 같다. 조지 오웰이 식민지배의 경찰역할을 하며 느꼈던 제국주의에 대한 경멸과 통찰이 사실 소설의 주제다. 실제로도 조지 오웰은 제국주의 경찰직을 그만 둬 버리고, 이 시기를 속죄하는 마음으로 영국의 빈민가에서 노동자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사회주의 정치관을 정립했다가, 결국은 그 정치사상이 파시즘이나 전체주의로 가는 모습을 보며 쓴 소설이 바로 인류의 역작 동물농장과 1984다. 나는 1984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의 작가로서의 커리어가 버마시절에 젖줄을 대고 있다니 참 흥미로웠다.

 

  조지 오웰은 떠났지만, 그리고 결국에는 영국인들도 식민지 해방 행렬 속에서 버마를 떠났지만. 남은 이들은 그토록 확고부동했던 체제의 붕괴 후에 파란만장한 역사를 겪어야했다. 영국도, 일본도, 그 어떤 외세도 달갑지 않아했던 당시 버마 군부와 주변 지배층은, 식민정부의 손발을 담당했던 벵갈계 버마인들 - 로힝야로 대표된다 -에 대한 탄압을 시작하고 실제로 쫓아내버리기도 했으며, 이렇게 제국주의의 상흔이 크게 작용된 시민법이 만들어져 로힝야는 몇 세대 이후로도 결국 미얀마인이라고 인정을 못 받게 된 것이다. 참 놀라운 일은 이 역사를 미세한 렌즈로 들여다보면, 이도 결국은 영국이 자기 똥 싸놓은거 제대로 안 치우고 간 이유인데.. 21세기에는 로힝야 탄압에 대해 또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서방세력이라는 게 아니꼬워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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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쨋든 미얀마 사태가 사태다보니, 소설도 소설로 못 읽고 계속 21세기의 맥락에 닿는 어떤 물줄기를 짚어 가면서 읽었다. 자기 환멸에 사로잡힌 플로리는 어쨋든 지배층이고, 지배층으로서 체제에 느끼는 환멸과 그 체제의 부조리함을 모르는 무지한 영국인 지배층에 대한 증오를 보인다. 하지만 그 지배구조는 사회경제적일 뿐 아니라 심리적이기도 하고, 또 종교적이기도 한 것이라, 오히려 피지배층인 그의 친구 의사 베라스와미는 영국 식민지배가 가져다준 것이 버마에게 축복이라 생각한다. 복잡 다단한 세상 속에서 그 구조를 간파하고, 그 구조의 부조리함을 직시하는 지식인은 얼마나 괴로운 팔자인가. 그럼에도 그 지식인은 결국 그 체제의 단물을 자신도 얻어가며 생존하고 그 체제 속에서 사다리를 타기 위해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슬픈 방정식이, 현재에도 적용되는 것 같아, 나는 이 소설이 마치 나의 뼈를 때리는 것 같기도 했다. 빈곤과 불평등. 아름다운 용어와 논리로 빈곤과 불평등을 타파하기 위한 업계에서 일하는 나는, 그 업계에서의 불편한 진실들도 알고 있고, 그 불편한 진실에서 나도 득을 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이다. 그래서 나는 플로리의 혼잣말이 그의 생각이 세기를 넘어 공감을 일으킨다고 생각했다.

 

나는 공개적으로 나서지는 못 하오. 용기가 없소. 난 '실낙원'에 나오는 늙은 벨리알처럼 <비열한 안락함을 스스로 권하고 있는 셈> 이오. (p. 110)
그의 사고의 중심에 자리잡고 모든 것을 증오하게 만드는 것은 그 자식이 소속되어 살고 있는 제국주의에 대한 더욱 더 심한 증오였다. 왜냐하면 철이 들면서 ㅡ 우리는 우리의 두뇌가 명석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으며,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이 이미 그릇된 방향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을 때 두뇌가 뒤늦게 발달하여 자신들의 비참한 삶을 깨닫게 되는 것은 이들이 겪는 비극 중 하나이다 ㅡ 그는 영국인들과 그들의 제국에 대한 진실을 통찰했기 때문이다. (p. 178)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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