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무엇인가에 대하여

시간 관념에 대하여

by 주말의늦잠 2022. 12. 14.

  저번 주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일한 햇수가 5년하고도 5개월이 넘어가더라. 여기서는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나, 일하는 방식 등이 참 다른데.. 아주 다른 것 중 하나가 바로 시간관념이다. 석사 코스웍 할 때 개발학에서 배우는 것 중 하나가 비교경제학인데, 서로 다른 대륙이나 국가 들의 개발 궤적을 서로 비교하면서 국가 부의 성장과 경제/ 사회 개발의 이유가 무엇인지 역사학적으로 따져보기도 하고, 지표를 정해서 통계적으로 풀기도 한다. 이 때 자주 등장하는 것이 바로 '한강의 기적'이다. 다른 유럽 국가들이 200년 걸린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한국은 30-40년만에 해냈는데 그게 어떤 이유일까.. 운운하는 주제이다. 이 때 내가 기억하는 에피소드 중 하나가 바로 '코리아 타임'에 대한 이야기다. 한국 전쟁 때 미군이 한국에 들어와서 만들어낸 단어가 바로 '코리아 타임'이다. 이는 약속 시간에 일부러 혹은 피치 않은 사정으로 항상 늦게 오는 한국인들의 행동을 '코리아 타임'으로 명명하면서 한국인의 시간관은 항상 약속시간에 늦는 거라고 조롱했던 것이다. 몇 십년전과 달리 현재 한국인들은 어떤가, 시간 약속에 대해서는 특히 공식적인업무에 있어서는 시간을 칼같이 쪼개 사용하는 것이 기업문화이고, 그것이 프로페셔널하다고 받아들여지는 문화이다. 현재의 코리아 타임이라면 약속시간 전후로 15분 정도의 마진이 아닐까 싶다.

 

  서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아프리카 타임이라는 단어는 없지만, 아주 자주 쓰는 약어가 있다. TIA, This Is Africa. 굳이 번역하자면 '여긴 아프리카잖아?' 정도가 아닐까. 일상 전반에서 물자와 서비스가 부족하고, 특히 시간에 대한 관념이 아주 희박하기 때문에 미팅에서 1시간 늦게 시작하는 것은 별 뉴스거리도 아니다. 그리고 이제서야 얘기하자면, 나는 This Is Africa가 아주 틀린 문장이라는 것을 말라위에 와서 알게 되었다. 아프리카에서도 중진국 (Lower middle income) country, LMIC)정도의 성장을 달성한 가나나 케냐와 국가 소득수준으로는 전세계 국가들 중 뒤에서 7번째나 10번째를 차지하는 말라위와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같은 아프리카지만 성장 수준과 사회 개발 그리고 역사적 궤적에 따라 사람들의 성향과 철학이 아주 다르다. 

 

  말라위에서는 시간은 돈이 아니다. 이는 시간을 임금이나 돈으로 환산하는 산업이 국가에 부재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말라위의 2021년 기준 GDP per capita는 643 달러, 한화로 약 83만원 정도로 일반 국민이 월 7만원 정도 번다는 얘기다. 그리고 GPD per capita는 평균 데이터기 때문에 사실 poverty 데이터를 보면 국민의 40-50%가 완전빈곤상태 즉 하루에 1.2 달러, 한화 1,500원 정도로 살아간다. 사실 국민의 80-90%가 농부다. 그래서 시간을 쪼개서 노동투입을 해서 재화와 서비스를 만들어 가치 창출을 한 뒤 부를 만드는 산업이 국가에 없다. 이 말인 즉슨, 시간당 노동 임금이나 가치부가 수준을 측정하는 문화, 즉 시간이 돈이 되는 문화가 아직 없다는 거다. 

 

  물론 왜 시간 관념이 희박한가에 대해서는 다른 사회문화, 역사적인 설명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코리아 타임'이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보면서 나는 시간에 대한 관념 역시 국가와 사회의 성장과 개발과 연관이 있다는 생각의 실마리를 얻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This Is Malawi, TIM을 생각한다. 시간 약속에 큰 가치를 두지 않는 동료들, 다들 무시하는 데드라인, 뭐든지 마감일이 닥쳐서야 대충 해서 갖다 내보내는 행동들... 매일 실망하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는 몰래 뒷담화도 하면서 일을 해나간다. 하지만 결국은 다 컨텍스트 속에서 이해해야한다. 구한말에 선교사 주변인들이 조선인에 대해서 쓴 기록을 보면 마치 내가 가끔 말라위에 대해 생각하는 것 같다. '이 나라는 희망이 없다.' 외국인의 눈으로는 지저분 하고, 시간이나 효율에 대한 관념이 부재하며, 전체적으로 성장에 대한 아무 희망이 없던 그 나라 조선. 그 '희망이 없던' 나라는 그래도 몇 십년이 지나 거대한 부를 이룩한 국가가 되었고, 건재한 소프트 파워를 만들어나가는 나라가 되었다. 물론 국뽕 같지만 이건 팩트니까.. 이걸 생각하면서 나는 내가 마치 말라위 성장 커브의 아주 초기에 와서 '우와.. 이 나라가 어떻게 성장해 나가지?' 솔직한 마음으로 희망이 없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말라위의 청소년들, 젊은 청년들, 이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행동을 하는가에 따라 이 국가의 운명은 바뀔 수도 있다. 0세부터 35세가 전체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아주 젊은 나라. 한국전쟁에서 싸웠던 미군 할아버지가 2000년 언저리에 서울에 와서 놀랐던 것처럼, 내가 나중에 할머니가 되서 말라위를 봤을 때, 말라위는 어떤 나라가 되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