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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에 대하여

인생을 계획한다는 것에 대하여

by 주말의늦잠 2022. 12. 23.

  이 세상의 거의 모든 조직들은, 팀들은 그리고 사람들은 계획을 한다. 연간계획, 2개년 계획, 5개년 계획, 10년 계획.. 중국의 공산당은 100년 계획을 짠다지? 개인의 인생도 계획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달리 보인다. 부모에게 의지해서 교육과 학습을 통해 '어른'이 되는 어린이 시기, 10대를 지나 보통 20대부터는 경제활동을 시작하며 어느정도의 독립을 한다. 한국은 비싼 거주비나 다양한 사회적 팩터로 독립의 시기가 보통 결혼의 시기가 된 것 같지만, 어쨋든 20-30대 때가 되면 자신의 삶과 경제를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나는 학사에 석사까지 하고 그 후에 UN volunteer 로 커리어를 시작해서, 실제 경제활동은 20대 중후반에야 시작했다. 그리고 30-40대가 되면 결혼이나 출산에 대한 선택을 하게 되고 (될 것이고), 이런 굵직한 이벤트는 인생 계획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 한국 여성의 기대수명은 이제 85세 정도 되고, 85세에 죽는다고 하면 내 인생에는 적어도 50년은 더 남은 거다.

 

  내가 자라온 문화에서는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life planning 요소이다. 양육비나 교육비가 워낙 높고,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한 명 낳아서 잘 길러낸다는 것은 막중한 책임감을 요하기 때문이다. 반면 서하라 이남 국가들 아프리카 전반적으로 아이를 가지는 것은 무조건적으로 환영받을 일이다. 기독교인들과 무슬림 문화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모든 아이는 신이 주신 선물이라는 관념이 강하고, 아이를 가지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아이를 가지지 않는 여성은 뭔가가 모자란, 인생에서 어떤 중요한 일을 해내지 못한 (해내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 말라위에서도 아이가 없다는 것은 뭔가가 이상한 일로 여겨진다. 왜 아이를 안 가지지?

 

  내 생각에는 여기 아프리카에는 아직도 커뮤니티 그리고 가족 베이스의 문화가 강하기 때문에, 정부 능력과 사회보장시스템이 매우 약해도 아이를 낳아서 기를 수 있는 문화적인 인프라가 있다. 아이를 낳으면, 대가족 내에서 이모가, 고모가, 할머니가, 삼촌이, 해외에 있는 누군가가 다 힘을 합쳐서 함께 기르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한국과 같이 핵가족 이제는 1인가족이 트렌드가 되가고 있는 사회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그 책임은 오롯이 개인 혹은 부부에게 달리게 된다. 여성의 경우 잘못된 선택으로 미혼모가 되면, 그 책임감은 삶을 평생 짓누를수도 있다. 30대에, 40대에 이루고자 했던 것들을 미루거나 하지 못하게 되고, 원치 않은 선택으로 인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더 힘든 삶을 살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말라위에 일하면서 특히 청소년 성생식 사업 쪽을 집행하면서, family planning은 life planning, 인생계획의 아주 중요한 요소임을 간파하게 되었다. 아이를 축복 속에 낳는 것 까지는 좋은데, 길거리에 너무나 많이 보이는 아이들, (도로에 차가 쌩생 달리는데 왜 혼자 다니지?), 부모가 버렸거나 방치해서 길거리에서 매일 구걸하면서 살아야 하는 아이들, 학교에 가면 전구도 불빛도 하나 없는 어두운 교실에서 책상도 없이 차가운 땅바닥에 콩나물 시루처럼 앉아서 공부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보면 아이를 가지는 것에 대한 선택은 더 막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저축도 하나 없이 하루하루 벌어 사는 말라위 사람들은 왜 계속 아이를 가져서 낳아놓고 책임은 지지 않을까? 왜 그 쉬운 콘돔 (말라위 공립 병원가면 공짜로 주는데!)이라도 쓰지 않는 거지? 국민의 10%가 HIV 양성인데 무섭지도 않나? 사업을 진행하며 의문 투성이다. 난 이 세상에서 제일 싫은 사람들이 동물 학대범이랑 아동 학대범이다. 아이를 낳아놓고 제대로 기르지 않는 것은 명백한 아동학대다. 심한 말일 수도 있지만 그저 태어난 죄밖에 없는 아이들에겐 그게 현실이다. 

 

 그래서 인생 계획을 할 때는 내가 아이를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 아주 열심히 고민해야 한다.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면, 커리어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혹은 취미적으로 어떤 것을 이루고 경험하며 살지 계획하면 된다. 어떤 가족의 형태를 이루고 살 것인지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아이를 원한다면, 나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통해 아이에게 심리적으로, 물질적으로 풍족한 지원을 할 수있게 인생을 계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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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 계획에 있어서 나는 성장과 배움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와서야 그런 생각을 참 많이 한다. 어떤 지위, 어느정도의 부를 성취하는 것 자체는 중요하지만, 그것에 너무 매물되면 삶에서 많은 걸 놓치는 게 아닐까? 예를 들면, 연말에 재미있는 여행을 할 친구들, 만나서 해줄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와 경험들, 인생을 경험하고 즐길 수 있는 건강한 몸과 마음, 부모님과 가족과 친구들의 믿음과 신뢰, 베풀 수 있는 마음가짐과 성숙함, 가끔 눈물날 만큼 멋진 사랑, 클리셰지만 결국 주위의 사람들이 주는 믿음과 신뢰, 사랑이 없다면, 그런 것들의 인생계획에 녹아들어있지 않다면, 그 인생에서 어떤 성취를 할 수 있는 것일까?

 

  솔직히 21세기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결혼과 아이의 유무는 나에게 놓여진 아주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다. 내 인생 계획에서 어떤 사람들과 어떤 이야기를 하며 살아가고 싶은가. 그리고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사회적, 경제적인 지위를 가질 수 있는가.. 이런 것들이 요즘 내 인생계획의 화두이다. 말라위에서 만난 친구들 중 한 명이 자기는 항상 자기가 죽는 날 장례식에 온 친구들, 가족들이 자신을 어떻게 기억할지가 가장 중요한 인생 목적이라고 했다. 그 때 들을 때는 '뭔 소리야, 장례식 날까지 왜 기다려?..' 이런 생각을 했는데, 오늘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의 말이 참 일리가 있다. 내가 죽는 날, 내 인생은 어떻게 기억될까. 이런 생각을 하면 오늘 만난 동료들, 함께 정을 나누고 사랑했던 이들, 그 모두가 나에겐 참 중요한 인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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